캐나다의 기부 문화

제가 이민자로 캐나다에 와서 살면서 캐나다 사람들에게 배워야겠다고 느낀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가슴 깊이 느껴지는 것은 캐나다의 기부 문화입니다.

기부가 뭔지 느끼게 해 준 고마운 두 분

제가 캐나다의 기부 문화에 대해 처음 느낀 것은 무슨 캠페인이나 통계를 통해서가 아닙니다. 저를 개인적으로 도와 준 어떤 할머니 한 분, 그리고 목사였고 또 불어 선생님이셨던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을 통해서입니다. 그 분들은 영어 소통이 어려웠던 저를 위해 시간을 내서 계속 대화해 주고 제가 쓴 글을 교정해 주고 삶 속에서 캐나다 문화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씩 몇 년 동안이나 그렇게 해 주셨습니다. 나중에는 친구가 되어 할머니의 카티지에 초대받아 저희 가족이 며칠을 보내기도 하고, 할아버지의 집에서 추수감사절을 보내기도 했지요. 집에서 빵을 굽는 것도 보고, 정원을 가꾸는 것도 보았습니다. 저희 집에 오셔서 사모님께서 터키 요리하는 법을 아내에게 가르쳐 주신 적도 있고요. 저희도 그 분들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했지만 당시에는 별로 보답할 길도 딱히 없어서 추수감사절이 되면 꽃과 카드를 보내는 정도만 했습니다.

저에게 잘 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제가 참여하는 일에도 기꺼이 기부를 해주셨습니다. 당시에 저희 교회에서 난민들을 돕고 있었는데 그 얘기를 들으시고는 다음 주에 $200짜리 수표를 써 주셨습니다. 제가 굳이 요청한 것도 아닌데 그 일에 써 달라면서… 지금은 돌아가셨습니다만 저는 그 분만 생각하면 세상이 밝아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자식이 없었던 할머니는 7명의 고아를 입양해서 키우셨습니다. 개도 주인 없는 개를 입양해서 키우셨고요. 천국이 있다면 그런 분이 사는 곳, 그런 분 옆이 바로 천국일 것입니다. 저는 운이 좋아서 그런 분들을 만났고 덕분에 낮선 땅, 낮선 문화, 익숙지 않은 언어를 그리 낮설지 않게 느끼며 잘 정착을 할 수 있었습니다.

캐나다의 기부 통계

통계를 찾아 보니 2010년에 15세 이상의 캐나다인 중 84%가 기부를 하였더군요(기사 링크). 저 정도면 정말 가난한 사람 빼고는 거의 모든 사람이 기부를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인당 일년 평균 기부액은 $446달러. 우리 돈으로 40만원 정도네요. 그걸 다 합하면 일년에 100억 달러가 넘는 돈입니다. 본격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35세에서 54세 사이의 인구는 기부율이 88.5%입니다. 이런 기부는 개인적으로 누구를 도와주는 것은 빼고 여러 민간기관(charitable organization이라고 하는데 161,000개가 등록되어 있음)에 공식적으로 기부한 것만 집계한 겁니다. 저런 기관들은 기부(그리고 그 기부금액만큼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matching fund)에 힘입어 사회 구석구석 힘든 이들을 돌봅니다. 캐나다 사회의 전반적인 안정성은 바로 이런 문화 덕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릴리아의 병원, 공원, 신문에서 느끼는 기부와 자원봉사자의 물결

돈뿐만 아니라 시간을 내서 봉사하는 분들도 정말 많습니다. 어딜 가나 자원봉사자들이 있는데 특히 병원은 어딜 가든 자원봉사자들이 방문자들을 안내하거나 환자 이동을 도와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로는 백발의 노인들이신데요, 이런 분들은 의료비에 쓰이는 막대한 세금을 절약해 줄 뿐만 아니라 병원 환경에 위로와 웃음을 심어주는 정말 고마운 분들이지요.

 

 

제가 시골로 이사를 와서 근처 오릴리아라는 작은 도시의 공원을 자주 산책하는데 호숫가 산책로를 따라 놓여져 있는 벤치는 모두 돌아가신 부모님을 기념하여 자녀들이 시에 기증한 것입니다. 벤치에 작은 팻말이 붙어 있죠.

오릴리아에서 일주일에 한 번 발간되는 지역신문에 부고란을 보다가 재미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글 제일 아래에는 늘 부조를 자기 가족에게 보내지 말고 고인이 마지막으로 머문 병원, 요양원 혹은 심장병연구재단, 지역의 치매지원기관에 기부해 달라는 말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저런 것을 도무지 본 일이 없기 때문에 참 신기했습니다. 오릴리아 시민들이 다 부자가 아닌데, 더구나 평균 수입이 토론토 시민들보다 약간 낮은데, 그런데도 다들 고인의 삶에 대한 기념과 애도의 표시를 돈이나 꽃으로 하지 말고 다른 이들을 위한 기부로 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무궁화 양로원

한인 이민사회도 나름 열심히 기부를 합니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노인들을 위한 양로원이 한인 이민사회에서는 큰 이슈입니다. 음식이 맞지 않고 돌보는 사람들과 소통이 되지 않아서 큰 고통을 겪지요. 그래서 몇몇 한인들이 나서서 노력하여 2012년에 한국어로 운영되는 양로원을 하나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경영란에 빠져 경매에 넘어가게 되자 2017년 가을에 한인 사회에서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캐나다에 자회사를 설치하고 제품도 많이 파는 현대, 삼성 등의 기업체에서는 기부가 없었습니다. (한인들은 다 삼성폰 쓰고 현대차 타는데… 지금도 서운함…) 하지만 교민들이 몇 백불씩 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이 거리에서 옥수수를 팔아서 번 돈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10만불을 기부한 의사도 몇 분 계셨습니다. 토론토지역의 한국어 신문들에는 매주 기부현황을 기사로 실어주었습니다. 무엇보다 토론토의 한 교회는 자기네 교회 건물을 저당잡아 50만불을 대출받아 전달하고 그 금액을 자기들이 매달 갚아나가는 방식의 기부를 공동의회에서 결의했습니다. 이기적이기로 유명한 개신교회가 오명을 조금 벗는 순간이었지요. 그런 요인들이 합쳐져서 두어 달 만에 목표액 350만불에서 약간 모자라는 344만불이 모금되어, 그것으로 양로원을 무사히 지킬 수 있었습니다. 한인들은 잘 뭉치지 못한다는 편견을 깨고 이루어낸 한인 이민사회의 쾌거였지요. 제가 한인이라는 것이 너무도 자랑스러웠습니다.

토론토 성인장애인공동체

이 단체는 말 그대로 한인들 중에서 장애가 있는 분들의 공동체입니다. 이 단체를 지원하기 위한 조찬 모금회가 토요일 아침에 있었는데, 이른 시간인데도 자리가 꽉 찼습니다. 주차 안내부터 음식 서빙까지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섬겨주었습니다. 재능을 기부하여 공연에 참가한 분들도 있고요. 신선한 아침식사를 대접하겠다면서 성인장애인공동체 회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새벽 4시부터 음식을 함께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들으니 너무 고마워서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을 지경이었습니다. 그 분들이 판매용으로 만든 김치, 족발, 수세미도 그날 다 팔렸습니다. 행사가 끝나자 손님으로 온 분들도 다 같이 접시를 치우고 식탁보를 정리하고 탁자를 접어 옮기는 일에 동참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이런 분들이 있어서 살 만한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로또를 맞아도 크게 맞은 것이죠. 마음에 감사가 있으면, 그리고 내가 가진 작은 돈과 작은 시간을 누군가와 나눌 여유가 있으면, 우리는 누구나 부자입니다. 서로 나누어서 함께 행복하고 함께 풍요로운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 한 소절 아래에 붙여 봅니다.

저기 높이 솟은 산이 되기보다
여기 오름 직한 동산이 되길
내 가는 길만 비추기보다는
누군가의 길을 비춰 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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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yan
Bryan

의학문서 번역가와 온라인 비즈니스 전문가로 살고 있습니다. 행복한 번역가 배움터, 브라이언의 캐나다와 행복 이야기, 느린 삶이 주는 평화 등의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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