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삶이 주는 평화

바쁜 것이 자랑이고 바쁜 것을 능력의 증거처럼 여기는 세상에서 ‘느린 삶’이란 생뚱맞습니다. 고속도로에 갑자기 나타난 야생동물처럼 위험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속도에서 짜릿한 쾌감을 느끼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런 쾌감에 물린 듯 합니다. 한 이백 년 질풍노도처럼 달음박질을 한 인류에게 지금 남은 것은 환경파괴, 심한 경쟁에서 오는 피로감, 어디에도 뿌리 내리지 못한 공허함,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데 속도는 점점 빨라져간다는 불안감… 그런 것이니까요.

그런 것을 경고한 석학, 성인, 현자, 용감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쁘고 정신 없고 낭비가 심한 오늘날의 삶에 반기를 들고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시대를 거슬러 은자와 수도자의 삶을 사는 이도 적지 않고요.

그런데 저는 그런 사람이 못 됩니다.

현대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고 자연 속에서 자연의 소리와 빛깔에만 취해 살기에는, 저는 현대 문명의 편리함을 너무 잘 압니다. 불편한 것도 잘 못 참고요. 게으르고 몸도 약합니다. 남을 해칠 생각은 해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약아빠진 면이 없지 않습니다. 한 신념을 가지고 줏대있고 소신있게 쭈욱~ 살아낼 강단도 없습니다. 미욱하고 미약한 미물이지죠.

그런 제가 감히 느린 삶을 동경하고 느린 삶을 향해 작은 발걸음을 떼 왔습니다. 그것은 안에서 솟구치는 신념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의 품 같이 따사로운 자연의 손길, 편안하고 구수한 냄새, 언제 찾아가도 거기 그대로 있는 옛동무 같은 친근함, 자연의 속도가 주는 위로… 그런 것이 조용히 손짓해 저를 불렀기 때문입니다. 제가 스스로 깃발 들고 용감하게 어디로 행진해 간 것이 아니란 얘깁니다. 청순한 아내의 모습에 끌려 연애를 시작했던 젊은 시절처럼, 저는 인생 딱 중간에 또 한번 조용하지만 거절하기 힘든 이끌림에 끌리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제가 사는 느린 삶은 강력한 미니멀리즘이 아닙니다. 소위 말하는 ‘은퇴’의 삶도 아니고요. 저는 매일 인터넷을 기반으로 번역 비즈니스를 하고, 웹사이트 비즈니스도 꽤 많이 벌여 놓았고, 새로운 기술과 플랫폼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고 애를 쓰며 삽니다. 주말에는 아이들이 있는 도시로 가서 밥 먹고 교회도 다녀옵니다. 그러나 물건을 적게 사려고 애쓰고, 작은 집에서 살고 작은 차를 몹니다. 즐겁게 일하되 일에 매몰되어 살지 않습니다. 돈을 벌되 돈이 목적이 되지 않도록 늘 스스로 깨우칩니다.

그런 양면을 조화(아니, 절충!)시킨 저의 느린 삶이란 대충 이런 모양입니다.

  • 돈은 없으면 안 된다. 돈을 어느 정도는 벌어야 존엄하게 살 수 있고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돈 버느라고 건강을 해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니 너무 큰 돈이 필요하지 않은 라이프스타일을 찾아내고 거기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 집과 차는 남이 아니라 내게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것 가지고 사치할 필요 없다.
  • 일은 즐거운 것이고 죽는 날까지 쉬지 않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일하느라고 바빠서 일출과 일몰을 놓치지는 않는다.
  • 자연은 멀리가야 즐기는 것이 아니다. 자연은 내 가까이 있고 그래야 한다. 내가 자연의 일부이다. 내 주변의 동물들과 식물들을 존중하고 예뻐하자.

저 정도를 ‘느린 삶’이라고 주장할 수는 결코 없습니다. 거창할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환경애호가들에게 욕이나 먹지 않으면 다행일 겁니다. 아직도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중남미에서 수입된 과일을 식탁에 올리니까요. 한 몇 년 채식을 실천했지만 그것도 슬그머니 무너졌습니다. 이유는 있었지만 아무튼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의 삶이 옛날 한국에서 살 때와는 매우 다른 삶이라는 점입니다. 끼니도 한 끼 줄이니 시간 여유도 더 생겼습니다. 매일 산책합니다. 아침에는 앞마당에 고개를 뾰족 내미는 식물들을 쳐다봐주고, 칭찬해 주고, 물을 줍니다. 날씨 좋은 오후에는 햇볕에 배 까놓고 뒷마당에서 잠깐 잡니다. 저녁에는 카누를 타고 호수에 나가 석양을 바라보다 들어옵니다.  뒷마당 쪽 물길에 놀러오는 캐나다 구스, 백조, 자라, 비버 녀석들에게 농담도 걸고 시비도 걸고 예쁘다고 칭찬도 해 줍니다. 해지면 모닥불 피워두고 그게 꺼져 발갛게 이글거리는 숱이 되는 것을 지켜 봅니다. 거기에 감자를 묻어두었다가 아침에 꺼내 먹습니다.

내 형편에서 갈 수 있는 만큼 자연에 다가가 안기니, 자연이 저를 안아줍니다. 굳이 느리게 살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 가까이 사니까 느려집니다. 바삐 뛰어가려는 저를 자연은 잔잔하게 타이릅니다.

“야, 뭐가 그리 바쁘니? 넌 나중에 안 죽을 거야? 결국 죽을 거잖아… 살아 있는 동안 삶을 소중하고 아름답게 여겨. 그러면 나중에 죽을 때도 후회가 없을 거야.”

저런 소리가 저를 타이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해도 좋고, 자연의 속삭임이라 해도 좋고, 말라 죽었다 겨우 소생한 제 양심의 소리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면 저는 다시 조금 느려집니다. 이웃들과 시시한 일상얘기를 할 시간도 생깁니다. 욕심과 불안이 사라집니다. 자연의 일부인 저에게 만족합니다. 얼굴에 다시 미소가 어립니다. 제 삶에 대한 눈물겨운 감사가 가슴에 자리를 잡습니다.

오늘도 해가 조용히 지려 합니다. 호수에 가봐야겠습니다.

[나중에 덧붙임]

제가 ‘느린 삶이 주는 평화’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습니다. 주로 저희 동네 풍경과 동물들이 나옵니다. 시골길을 달리며 찍은 풍경, 카누를 타고 동네를 돌며 찍은 풍경, 된장국 끓이는 모습 등도 담을 예정입니다. 기네스북에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비디오’ 카테고리가 생긴다면 유력한 후보입니다. 지겨울 수 있다는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방문해 보실 분은 여기를 클릭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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