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주로 미국이 돈 찍어내는 얘기를 많이 하고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를 길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 달러가 조만간 약세가 될까요? 캐나다 달러나 한국 원화, 유로, 중국 위안이 날로날로 강해지는 걸까요? 제 독자 중에는 번역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분들은 모두 유로나 위안으로 거래 기본통화를 바꾸어야 할까요?
글쎄요, 그게 그리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앞에서 기축통화 얘기를 다소 길게 했습니다.
우선 달러의 상대적인 힘을 나타내는 지표로 DXY라는 것이 흔히 쓰입니다. 미국이 달러를 많이 찍어낼 수록 DXY는 약해질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동안 DXY는 팬데믹 이후에 꾸준히 강해져왔습니다.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일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아직까지는 달러가 굳건한 기축통화이고, 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아직도 미국 달러를 대표적인 안전자산(저는 동의하지 않지만요)으로 여기기 때문에 팬데믹이나 전쟁과 같은 위기가 닥치면 다들 미국 달러를 보유하고 있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팬데믹이나 전쟁과 같은 위기상황에서는 미국 달러가 강해지는 겁니다.
둘째. 미국 달러를 대체할 만한 다른 강력한 통화가 세상에 정말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한때 유로가 그런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유로는 달러보다 돈을 더 많이 찍어내고 있고 이자율도 계속 마이너스로 유지할 수밖에 없더군요. 중국은 내부에 부동산 문제 등 산적한 부채 문제가 있습니다. 영국, 캐나다, 호주의 통화는 미국 달러를 대체할 군사적 뒷받침도 없거니와 규모도 너무 적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미국 달러의 가치가 하락하더라도 미국 달러는 앞으로 상당히 긴 기간 동안 국제결제 통화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DXY는 미국 달러의 절대적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가 아니라 다른 주요국 통화와 비교한 상대적 가치입니다. 그러므로 DXY는 앞에서 제가 말씀드릴 버블 붕괴(뻥!)가 나타나면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초강세가 될 것입니다. 미국 달러 가치의 하락 때문에 터지는 버블 붕괴인데 미국 달러의 상대적 가치가 급상승할 것이므로 정말 아이러니란 표현 외에는 달리 쓸 표현이 없습니다.
이런 현상을 이해하기 쉽도록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낙하산 부대를 생각해 봅시다. 군인들이 비행기에서 수백명 뛰어내려 낙하산을 펼칩니다. 그러면 버섯처럼 생긴 물체가 점점이 흩어져 내려오겠지요. 이게 바로 지금 세상의 모든 통화(currency)의 상황입니다. 다들 빚더미에 올라있고 다들 윤전기를 쉴 새 없이 돌려서 그 가치가 하락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어떤 낙하산들에는 작은 구멍이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그 낙하산들은 구멍이 없는 낙하산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떨어지겠지요. 그게 바로 환율입니다. 환율은 다들 땅으로 떨어지고 있는 낙하산들 중에서 어떤 것이 상대적으로 더 빨리 떨어지고 어떤 것이 조금 느리게 떨어지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수치입니다. 결국 세계의 정부들이 권력을 동원하여 만들어낸 인위적인 통화(이런 것을 영어로 fiat currency라고 합니다)는 하나같이 그 본래적 가치가 전혀 없고 그나마 계속 더 많이 찍어내기 때문에(인플레이션) 단위 통화(1 달러, 1만원 등)의 가치는 결국에 다들 땅으로 곤두박질을 치는 것입니다.
이점을 명확하게 이해시면 다음과 같은 혜택이 있습니다.
DXY와 같은 지표 때문에 미국 달러는 가치를 보존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착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버블 붕괴 시에 한 통화에서 다른 통화로 갈아탐으로써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습니다.
미국 달러의 위기를 자세히 관찰하고 예견하고 있는 사람들이 미국 달러에서 다른 통화로 갈아타거나, 한국 등에서 미국 달러를 안전자산으로 여겨서 미국 달러로 갈아타는 것 등은, 단기적으로는 잠시 이익이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다 소용 없는 일입니다. 환율은 상대적인 가치를 표시하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며 모든 fiat money는 결국 모든 가치를 잃게 되고 낙하산들은 느리게든 빠르게든 결국 땅에 떨어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