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란 무엇인가
대부분의 사람에게 은퇴란 “지금까지 생업으로 하던 일을 아주 그만두는 행동”을 말합니다. 그러니 일시적 실업, 휴직, 이직/전직을 위한 일의 일시중단, 휴가 등과는 차원이 다른 충격을 본인과 가족에게 끼치지요. 그리고 그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고 국가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65세가 기준인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전에 실직하여 은퇴를 ‘당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면 은퇴는 은퇴자와 그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가장 눈에 띄는 영향은 경제적인 측면입니다. 지금까지 꽤 안정적으로 생기던 돈이 앞으로 영원히 생기지 않게 되는 것이니 경제적인 측면에서 전무후무한 변화입니다. 투자 수입, 연금 수입, 패시브 인컴 등이 없는 경우에는 갑자기 빈곤층이 되는 셈이니 두려운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은퇴를 대비해서 비록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경제적 대비를 해 두었다면 그다지 두려워할 것이야 없겠지요. 사람은 적응하기 나름이니까요. 수입이 적어지면 지출을 줄여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와 같이 생각한다 해도 여전히 은퇴는 많은 사람에게 충격과 상실의 경험입니다. 그것은 할 일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지긋지긋한 일을 마침내 하지 않게 되었으니 시원할 것이라고 생각할 분도 많겠지만, 그게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흔히 일이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사람에게 일이 가지는 의미는 그것보다 훨씬 큽니다. 일을 통해 사람들은 사회와 연결되고 사회에 기여합니다. 수입은 그런 기여에 대한 보상인 것입니다. (보상의 정도가 공정한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그 동안 경제적 대비를 잘 해 두어서 이제 더 이상 근로 소득이 없어도 충분히 살 수 있다고 해도, 할 일이 없어진 사람의 상실감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놀고 쉬는 것도 하루이틀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갈 곳도 없고 할 일도 없다면 삶의 의미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게 됩니다. 사회의 복잡한 네트워크에서 분리되어 조용할 지는 몰라도, 어제와 오늘이 똑같아지고, 지난 주와 이번 주가 똑같아집니다. 아니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다음 주도 이번 주와 똑같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해는 아침마다 새로 떠도 그 새로 뜬 해 아래서 자신과 가족과 사회와 세상을 위해 해 볼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은퇴 전에는 견실한 판단력을 보여주었던 분들이 은퇴 후에는 마치 끈 떨어진 연처럼 사소한 감정의 울렁임에 휩쓸리고, 얄팍한 정보에 귀가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며, 성격이 변하기도 하고, 술이나 도박에 빠지기도 하며, 건강이 갑자기 나빠지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은 은퇴의 경제적인 충격만으로는 도저히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일이 사람에게 주는 삶의 의미를 상실했다는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충격입니다.
그렇게 보면 은퇴는 실로 두려운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말 걱정하고 대비해야 할 무엇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막상 대비하려고 해도 대비할 길도 별로 없습니다. 한국에서나 북미에서나 은퇴에 대해 말할 때는 다들 경제적 측면만 가지고 말합니다. 요즘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 그 수명대로 살려면 돈을 얼마나 많이 모아 놓아야 되는 줄 아느냐, 너 그만한 돈 벌써 모아두었느냐, 아니면 지금 착실히 모으고 있느냐 등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받습니다. 그게 소위 공포 마케팅입니다. 사람들 겁주어서 자기네 연금 상품, 보험 상품, 장기 주식 투자, 부동산 투자에 돈을 끌어 오려는 것이지요. (물론 그런 공포 마케팅의 메시지에도 들을 만한 내용이 있고 일면의 진실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공포 마케팅에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뭐냐하면 은퇴라는 것은 누구나 해야 하는 것이라고 이미 전제를 깔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좀 있다가 아래에서 설명하겠습니다.) 결국 개인이나 사회나 하나같이 어느 시점이 되면 다들 일을 그만두어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이건 마치 “앞으로 3년 뒤에는 내가 암에 걸린다” 하고 생각하며 사는 것과 같습니다. 은퇴 전부터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어깨에 힘이 빠집니다. 마치 은퇴란 피할 수 없는 절대적 진리, 죽음과 같이 누구나 당연히 겪어야 하는 삶의 통과의례, 그것도 자신이 살아있지만 쓸모는 없게 되어버리는 고통스러운 통과의례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늘 그랬을까요? 앞으로도 그래야만 할까요? 과연 그렇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자신의 쓸쓸한 사회적 퇴장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사회의 한 구석에서 조용히 시들어가는 것이 정상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늘 그렇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자신의 생각을 바꿈으로써 이러한 은퇴 개념을 거부하고 건강하고 활기차며 보람있고 행복한 삶을 죽을 때까지 살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저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는 사회에 만연한 지금과 같은 은퇴 개념이 언제, 어떻게, 왜 생겨났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은퇴 개념은 언제, 그리고 왜 생겼나?
우리는 현재 사회의 모습을 먼 과거나 미래로 투사해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예컨대, 지금은 누구나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고 물건을 사고 팔며 인터넷은 생활 어디에나 파고들었기 때문에, 인터넷 세상에서 태어나고 자란 세대는 인터넷이 없었던 세상을 상상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실은 불과 한 삼십년 전만해도 인터넷이란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존재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지요. 그러나 오늘날 인터넷과 함께 자란 세대는 그런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상상하기가 힘듭니다. 인터넷은 마치 아주 옛날부터 당연히 있었던 것처럼 믿기가 십상입니다.
저는 은퇴 개념도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은퇴라는 것이 처음 생긴 것은 1889년,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 때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평생 힘들게 일했으니 65세가 되면 이제 일을 쉬어도 국가에서 부양해줄 만하다고 발표했지요. 말은 멋있게 해지만, 실은 은퇴를 통해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만들어주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은퇴라는 것이 이때 생겨났습니다.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할 두 가지를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 65는 매우 자의적인 숫자입니다. 그것에 대한 어떤 과학적 근거도, 사회적 합의도 없었습니다. 그 숫자는 오직 통계적 중요성만 있었습니다. 즉 67세가 당시 독일의 평균 수명이니 죽을 때가 거의 다 된 나이라는 의미였을 뿐입니다. 65세로 정하면 국가는 기껏해야 1-2년만 연금을 주면 되었던 것이죠.
- 지금의 은퇴라는 개념은 20세기 이전에는 독일 이외의 지구상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19세기까지는 인류는 은퇴라는 것이 뭔지 전혀 모르고 살았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생겨난 은퇴라는 것이 점점 산업화된 서구에 퍼져나갔고, 2차 대전 이후에 이 은퇴 개념은 새로운 차원을 띄게 됩니다. 젊은 세대가 직업 때문에 고향과 나이든 부모 곁을 떠나는 일이 많아졌고, 그래서 은퇴한 사람들은 점점 자식들, 손자손녀들, 젊은 세대 및 사회로부터 격리되어갔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영양과 의료가 개선되면서 사람들의 수명은 길어졌습니다. 아직 건강하고 살 날도 많은데 일도 없고 돌볼 자식들과 손자손녀들도 없는 이상한 그룹이 생겨난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강요된 은퇴를 부정적으로 보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50-60%의 남성들은 기회만 주어지면 65세 이후에도 계속 일하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문화적 공백을 레저 산업이 뛰어들어서 은퇴 이후의 시기를 레저를 즐길 시간으로 묘사하고 가르치고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은퇴자들이 지금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했다고 설득했으며, 레저는 지금까지 힘들게 일해 온 모든 노인들이 당연히 누릴 권리라고 주장했습니다. 사회에 대한 기여를 멈추고 휴식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몰두하고, 재미를 추구하라고 부추겼습니다. 오늘날의 은퇴 산업이 제시하는 은퇴의 모델이 완성된 것이지요. 이런 노력은 1951년 미국의 Corning Corporation에서 처음 시작한 것이므로 오늘날의 은퇴 관념은 아무리 넉넉히 잡아도 아직 70년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가속시킨 또 하나의 힘은 보험업계입니다. 보험회사들은 연금 상품을 만들어 팔았고, 은퇴준비 교실을 열어서 실제로 레저를 어떻게 즐기는지 가르치면서 이런 은퇴생활을 위해 지금 뼈빠지게 노력하고 저축하라고 독려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이 인생의 황금기를 즐길 때에 자신만이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는 비참한 처지에 떨어질 것이라고 겁을 주었습니다. 또한 65세 이후에도 일을 하는 것은 젊어서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일종의 벌로 보게 만들었습니다. 젊어서는 아무튼 열심히 일을 해서 연금을 붓고 때가 되면 다들 은퇴해서 그 때부터는 그 지긋지긋한 일을 그만두고 즐기는 것이 정상이요 규범이요 지혜라는 것이지요.
지금과 같은 은퇴 개념 속에 숨어 있는 거짓말
저는 지금 레저업계와 보험회사들이 거짓말만 하는 악한 세력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그들의 주장에는 상당한 진실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만들어낸, 그리고 위에 묘사한 오늘날의 은퇴라는 개념에는 매우 큰 문제가 있습니다. 부분적으로 맞는 말을 한다고 그들의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면 안되는 이유입니다. 오늘날의 은퇴관념에는 다음과 같은 거짓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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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짓 1: 일은 그 자체로 사람에게 의미와 가치와 기쁨을 주지 못한다. 사람은 본래 일을 하는 것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을 선호하는데, 일을 해야만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다들 하는 것이다. 즉, 일이란 나중에 레저를 즐기며 살기 위한 돈을 마련하는 수단일 뿐이다. 그러므로 젊을 때는 하기 싫은 일이라도 억지로 참고 해야하며 때가 되면 일을 중단해야 한다.
- 거짓 2: 일을 통해 느끼던 성취감, 소속감, 사회에 기여한다는 보람과 만족감 등은 일을 하지 않을 때에도 다른 방식으로 다 충족시킬 수 있다. 사실 재미있게 열심히 놀다보면 그런 것 생각할 겨를도 없다. 일을 하지 않고 계속 레저를 추구하고 계속 휴식을 추구하고 계속 자기 자신의 내면에만 골몰해도 지루하지 않고 매일 재미있을 것이다.
- 거짓 3: 대부분의 사람은 65세 전에 죽을 때(80세, 90세, 100세…)까지 쓸 돈을 다 모아둘 수 있다. 혹시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국가(실은 젊은 세대가 내는 세금)가 그들의 레저비용을 지불해 줄 수 있다. 65세까지 일한 사람들이 놀고 재미를 추구하는 것은 그 때까지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보상이고 당연한 권리이므로 젊은 세대가 그들의 기여에 고마워하며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
- 거짓 4: 사람들이 65세 정도에 은퇴하는 것은 다 그럴 만한 생물학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고, 사람들은 언제나 그 정도까지만 일을 하고 그 뒤에는 일을 하지 않았다. 65세 이후에도 일을 하는 것은 노년을 불행하게 보내는 것이다.
- 거짓 5: 65세 은퇴는 전세계적인 현상이고 한국이나 캐나다와 같은 발달된 사회에 사는 우리로서는 당연한 권리이다.
위의 진술들이 거짓이라는 것은 자명하거나 제가 앞에서 제시한 자료를 통해 분명해지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하나씩 짧게 반박하고 넘어가겠습니다.
- 거짓 1: 일은 그 자체로 사람에게 의미와 가치와 기쁨을 주지 못한다. 사람은 본래 일을 하는 것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을 선호하는데, 일을 해야만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다들 하는 것이다. 즉, 일이란 나중에 레저를 즐기며 살기 위한 돈을 마련하는 수단일 뿐이다. 그러므로 젊을 때는 하기 싫은 일이라도 억지로 참고 해야하며 때가 되면 일을 중단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진심으로 믿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하고 하기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하면서 사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저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에서 매우 큰 의미를 찾고 가치와 기쁨을 느낍니다. 물론 일이 돈을 버는 수단이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이 그런 수단일 뿐이라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모든 일을 대신해 주는 가상적 미래에서, 소득이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피폐해질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생산적이고 싶고, 만들어 내고 싶고, 기여하고 싶고, 성취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싶어하지는 않지만 막상 일을 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어합니다.
- 거짓 2: 일을 통해 느끼던 성취감, 소속감, 사회에 기여한다는 보람과 만족감 등은 일을 하지 않을 때에도 다른 방식으로 다 충족시킬 수 있다. 사실 재미있게 열심히 놀다보면 그런 것 생각할 겨를도 없다. 일을 하지 않고 계속 레저를 추구하고 계속 휴식을 추구하고 계속 자기 자신의 내면에만 골몰해도 지루하지 않고 매일 재미있을 것이다.
이런 주장은 실제로 은퇴한 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과 제대로 대화를 해 보지 않기 때문에 생깁니다. 한 석 달 계속해서 골프만 쳐 보십시오. 그래도 골프가 재미있을까요? 실제로 그 분들은 매우 작은 보수, 아니 심지어 보수를 받지 않고라도 일을 하고 싶어합니다. 일을 통해 느끼던 성취감, 소속감, 사회에 기여한다는 보람과 만족감 등은 다른 식으로 충족되지 않습니다. 레저를 통해 잠시 그런 공허감을 달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런 속임도 얼마 가지 못해 동이 납니다. 레저는 무릇 일을 하는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지 일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레저가 무슨 기쁨이 된단 말입니까? 이것은 음양의 이론을 생각해 보아도 분명해집니다.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쉬는 것이 답인데 너무 열심히 일을 하다가 지쳐서 아예 일을 하나도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런 사고는 오류입니다.
- 거짓 3: 대부분의 사람은 65세 전에 죽을 때(80세, 90세, 100세…)까지 쓸 돈을 다 모아둘 수 있다. 혹시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국가(실은 젊은 세대가 내는 세금)가 그들의 레저비용을 지불해 줄 수 있다. 65세까지 일한 사람들이 놀고 재미를 추구하는 것은 그 때까지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보상이고 당연한 권리이므로 젊은 세대가 그들의 기여에 고마워하며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
대략 25세부터 돈을 번다면 65세까지 40년 버는 셈입니다. 그걸로 은퇴 이후 죽을 때까지의 기간인 15년에서 35년 정도까지 벌지 않고 먹고 살려면 도대체 그 40년 동안 돈을 얼마나 벌어야 하는 걸까요? 도대체 누가 그걸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비스마르크 때처럼 한 45년 벌어서 2년 일하지 않고 먹고 산다면야 가능하겠지만요. 그리고 국가가 그 비용을 지불해 줄 수 있다는 것은 미래 세대에 자신을 먹여살리라고 하는 무책임한 억지요, 추한 거지심보요, 파렴치한 착취입니다. 도대체 왜 한 세대가 그 이전 세대의 생활비용과 레저비용을 감당해야 한단 말입니까?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긴 하답니까? 천에 하나 가능하다 쳐도 그럼 그 다음 세대는요? 참으로 말도 안되는 발상입니다. 선거 때 가끔 은퇴자들을 대표한다는 사람들이 저런 주장을 하는 수가 있는데 참으로 철면피입니다. 은퇴의 삶을 누릴 수 있다면 그건 축복이요 행운이겠지만 그것이 모든 사람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는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을 권리라고 한다면 미래세대의 피땀을 희생으로 보장해 주어야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정의롭지 못하니까요.
- 거짓 4: 사람들이 65세 정도에 은퇴하는 것은 다 그럴 만한 생물학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고, 사람들은 언제나 그 정도까지만 일을 하고 그 뒤에는 일을 하지 않았다. 65세 이후에도 일을 하는 것은 노년을 불행하게 보내는 것이다.
위에서 제가 이미 설명하였듯이 65세는 비스마르크 시대의 독일 남자들의 평균수명에 근거한 숫자이고, 오늘날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자의적인 숫자입니다. 사람들이 65세에 은퇴해야 할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비스마르크 이전의 모든 독일 사람, 아니 모든 인류가 죽기 전날까지 일을 했습니다. 그것은 불행한 것이 아니고 당연한 것입니다. 아니 행복한 것입니다.
- 거짓 5: 65세 은퇴는 전세계적인 현상이고 한국이나 캐나다와 같은 발달된 사회에 사는 우리로서는 당연한 권리이다.
이것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한국이나 캐나다에서 당연한 듯이 이야기하는 은퇴라는 개념은 완전히 서구적인 개념이고 지극히 현대적인 개념입니다. 1950년 이전, 아니 불과 한 삼십 년 전만 해도 그런 것은 그다지 규범적 중요성이 없었습니다. 나아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을 가 보십시오. 이런 의미의 은퇴가 어디 있습니까? 모든 사람은 당연히 일을 합니다. 일을 하는 정도가 다르고 하는 일의 종류가 달라질 뿐이지 몇 십년을 일하지 않고 당연한 듯이 놀며 보내는 나라, 민족, 사회가 서구(그리고 급격히 서구화되어가는 한국과 일본 등) 외에는 도대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왜 소위 은퇴는 모든 사람에게 지옥인가
위와 같이 기본 가정이 잘못된 은퇴 개념이 사회에 확산되고 그것을 개인이 진리와 신조와 숙명으로 받아들인 결과, 은퇴는 이제 모든 사람에게 지옥이 되어간다고 생각합니다. 한번 보십시오.
- 은퇴한 부자: 은퇴 후 먹고 살 돈은 충분하지만 무소속감, 자신이 낡고 쓸모없어졌다는 자괴감, 무료함에 빠짐.
- 은퇴한 빈자: 남아있는 긴 기간 동안 죽을 때까지 가난에 찌들려 살게 됨. 자식 세대에게 과중한 부담(직접 부양, 세금 등)을 지움.
- 아직 은퇴하지 않은 자: 현재를 지탱하기도 버거운데 미래, 그것도 매우 긴 미래까지 동시에 대비해야 하는 미증유의 부담감을 가지고 허덕이며 살고 있음
이쯤되면 우리에게 이런 은퇴가 도대체 왜 필요한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은퇴거부 선언
제가 앞에서 이미 말했던 것처럼 현재의 65세 은퇴 개념은 현명하지도 않고 지탱할 수도 없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도 아닙니다. 그저 어쩌다 우리 시대에 만연하게 된 나쁜 개념일 뿐입니다. 그걸 단호하게 거부하면 새로운 길이 어찌 없겠습니까.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고 전 세계적이지도 않은 개념, 즉 일시적이고 국지적인 개념을 진리처럼 받들고 복종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저는 현재의 은퇴 개념을 단호히 거부합니다.
거부 이유는 이미 위에서도 충분히 말했다고 생각하지만, 위에 언급되지 않은 것을 몇 가지 더 추가적으로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앞으로 남은 상당히 긴 세월을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뒷방 늙은이로 재미없게 살고 싶지 않다
-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좋고 이 일을 통해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므로 이 일을 할 수 있는데, 인위적인 선을 그어놓고 그 뒤로는 안하는 말도 안되는 사회적 압력을 따르고 싶지 않다
- 내가 앞으로 살아갈 긴 세월(얼마나 긴 세월인지는 다음 글에 나옵니다)을 궁핍하게 살고 싶지 않으므로 계속 경제활동을 할 것이다
- 나는 정신이 맑고 육체가 강건한 상태로 살고 싶으므로 일과 휴식, 노동과 레저를 동시에 추구하고 싶지, 언제까지는 죽도록 일만 하고 그 후로는 질리도록 쉬고 노는 우를 범하지 않겠다
은퇴를 하지 않는 방법
그럼 은퇴를 거부하고 죽을 때까지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간단합니다. 누가 뭐라고 생각하든 개의치 않고 그냥 계속 일하면 되지요. ㅎㅎ 사실 저같은 경우는 그렇습니다. 누가 억지로 제게 일을 그만두라고 할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직장에 다니는 분들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또 나이가 들어서는 계속하기 힘든 사업,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을 현재 하고 있는 분들은 65세, 75세, 85세가 되도록 계속 그 일을 지속하기가 힘들겠지요. 그럼 어떻게 하지요? 대비를 해야지요. 어떻게 대비할지 제가 다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제가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자신의 삶이니 자신이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고 조사하고 결단하고 실행해야지요.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도 은퇴하지 않고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큰 원칙, 혹은 공통된 요소를 4가지 제시해 보겠습니다. 참고하시도록요.
- 현재 은퇴 시기가 정해져 있는 직장에 다니신다면, 은퇴 후에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일을 찾으십시오. 그 일이 꼭 지금처럼 돈을 많이 버는 일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사람은 다 적응하기 나름이고, 어느 정도 이상의 수입만 있다면 행복이 수입에 그다지 좌지우지되지도 않습니다. 은퇴 이전에 하던 일과 같거나 비슷한 일이면 좋겠지만, 그 일이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다면 이참에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찾는 것도 좋습니다.
- 현재 은퇴 시기가 정해져 있는 직장에 다니지는 않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이 일을 하기가 힘들다면, 그다지 힘들지 않은 일을 찾아보십시오. 그러나 새로운 일을 찾지 않고 단순히 일하는 시간만 줄이는 것도 고려해 보십시오. 예컨대 저희 부부의 옛날 패밀리 닥터는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셨는데 오전에만 일했습니다. 지금 패밀리 닥터는 저희보다 조금 어린 여성인데 일주일에 이틀만 일합니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라고 합니다. 이런 식이라면 굳이 은퇴라는 것을 따로 할 필요가 없지요. 그리고 은퇴해서 하려고 하는 것들을 이미 하고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지요.
- 지금 일이 너무 많고 그래서 쉬고 싶어서 은퇴할 날을 기다린다면 일을 줄여 보십시오. 지금도 수입이 별로 없는데 일을 어떻게 줄이냐고요? 무엇이 정말 중요한 것인지 생각하고, 그 다음에 방법을 궁리하고, 그 다음에 결단하면 다 수가 있습니다. 저희 부부도 그런 경우입니다. 또 부동산 중개인으로 바쁘게 지내시는 분들, 저희 동네같이 싼 시골로 이사와서 일을 계속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기본 집값이 싸니 벌어야만 하는 돈의 액수도 적어지고, 인구가 적으니 일감이 줄겠지만 대신 여유롭게 지내고, 그러니 건강이 나빠질 일도 없고, 은퇴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요? 잘 모르지만 그냥 생각해 본 것입니다.
- 이래저래 은퇴 아니면 답이 없다는 분들도 정말 그런지 생각해 보십시오. 대부분은 지금 돈을 많이 벌어야만 나중에 은퇴할 수 있으니까 몸을 혹사해가면서, 가족과의 시간도 희생시켜가면서 일에 몰두하는 것은 아닌지요? 그러니까 더욱 은퇴를 기다리고 은퇴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요? 혹시 말입니다. 수입이 줄더라도 일을 줄이면 건강도 유지할 수 있고 가족과 더 많이 시간을 보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없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실은 우리의 욕구의 산물이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 것 포기하고 나면 은퇴라는 것을 먼 미래에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그 은퇴의 삶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즉, 은퇴하고 나서야 비로소 가져야지, 해야지 했던 휴식, 가족과의 시간 보내기 등을 지금 당장, 오늘부터 시작하고 그것을 매일 지속할 수 있지 않을까요?
큰 원칙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사정이 다르다는 것도 압니다. 저는 그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일반적인 원칙을 제시해 본 것뿐이니, 구체적인 생각은 여러분께서 하셔야지요. 제가 더 할 수 있는 것은 제 얘기를 예로 제시하는 것뿐입니다. 특수한 예이니 여러분께서 따라하실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여러분께서도 조금 더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될까해서요. 그래서 지금부터는 좀 쑥스럽지만 제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앞에서 한 이야기를 적용하고 실천한 예라고 생각하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백살까지 살기로 했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말인가요? 네, 한국에서 “나는 백이십살까지 살기로 했다”는 책이 나왔더군요. 저는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건강에 대한 서적이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인명은 재천이라 했는데 스스로 몇 살까지 살겠다고 작정하거나 선언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것은 스스로의 생명을 조절할 수 있다는 교만한 생각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오래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단명한 사람들이 어디 원해서 그렇게 되었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저렇게 선언하는 것도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살다 죽겠다고 생각하면 남은 시간을 계획하고 관리하기도 힘들고 무엇을 열정적으로 추구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살 날이 얼마 남았는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먼 장래에 결실을 거둘 수 있는 일은 시작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노년의 삶, 아니 그 이전에 장년의 삶조차도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삶이 되지 않겠습니까?
거기에 반해 자신이 몇 살까지 살겠다고 작정하고 그렇게 선언을 한다면, 특히나 백살이나 백이십살까지 살겠다고 작정하고 선언을 한다면, 남은 시간을 알차고 보람되게 보내기 위해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고, 또 그렇게 살 수 있도록 건강, 관계, 돈 등을 적극적으로 준비할 것입니다. 먼 미래를 바라보며 묘목을 심을 수도 있고요. 호서대를 창립하신 분께서 65세에 은퇴를 하셨는데 그 분이 95세가 되는 날에 “나는 지금까지 30년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허비했다!”고 탄식하시고 그 날부터 외국어 공부를 시작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사실 옛날에야 65세에 은퇴를 해도 95세 생일까지 사는 분이 많지 않았겠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수명이 많이 길어졌고 계속 길어지고 있거든요. 물론 사람이 언제까지 살겠다고 작정하고 선언을 한다고 해도 실제로 그대로 되지야 않는다는 것을 저도 잘 압니다. 그러나 백살까지 살겠다고 작정하고 열심히 살다가 구십살이나 팔십살에 죽는 것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며 무기력하게 의미도 없는 연명을 하다가 팔십이나 구십에 죽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후자의 삶은 살았으나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꿈도 계획도 없고 호기심과 놀라움도 없고 열정도 없는 삶이라면 죽지 않았으나 이미 죽음을 반영하고 그것을 연습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살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작정과 선언을 했습니다. 백살까지 살겠다고요. 백이십살까지는 조금 과한 것 같아서 일단 이십년 깍았습니다. ㅎㅎ 살아보고 혹시 백살 가까이 되면 그 때 가서 다시 좀 조정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전제로 하여 삶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그런 계획과 준비로 매일을 알차고 보람있게 살도록 노력할 작정입니다.
백살까지 산다고 작정했을 때 준비해야 할 것들
백살까지 산다고 작정하고 나면 먼 미래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오늘이 달라집니다. 백살까지 살기 위해 지금 오늘 준비해야 할 것이 많이 생기니까요. 몇 가지를 열거해 보겠습니다.
건강
백살까지 살기 위해 지금부터 건강을 챙겨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활기차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건강이 가장 중요합니다. 눈 앞의 작은 일에 휩쓸려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건강을 소모하지 말아야 합니다. 크게 보고 멀리 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또 이 땅이 우리에게 주는 깨끗한 음식을 먹어야 하고, 열심히 운동해야 합니다. 건강에 대한 공부도 많이 해서 건강 박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 누구에게도 맡길 수 없고 미룰 수도 없는 중요한 과업이 바로 건강 챙기기입니다.
경제력
기본적인 경제력이 없으면 백살까지 살아도 행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마 이 말을 보험회사에서 들으면 당장 제게 전화하고 만나자고 해서 지금 한 달에 몇 백불씩 몇 년을 불입하라고 난리를 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는 경제력 준비는 그런 연금 불입이 아닙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이 부어야 백세까지 연금으로 먹고 산단 말입니까? 그만한 돈을 마련하려고 지금 무리를 하다가는 백세는 커녕 오년이나 십년도 더 못살고 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노후대비를 한답시고 현재 자신의 몸과 마음을 노예처럼 학대하고 바로 오늘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이 놀랍고 아름다운 시간과 관계와 기회를 희생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제가 다른 사이트에 쓴 다른 글(일과 삶의 균형)이 있으니 참조하십시오. 저의 경제력 준비 방안은 간단합니다. 은퇴하지 않는 것입니다. 죽기 직전까지 계속 일할 것입니다. 그렇게만 하면 나중에 일을 조금씩만 해서 비록 아주 적은 돈을 번다 해도 경제적인 면에서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이미 지금까지 조금 번 돈, 지금까지 부어온 CPP 등의 기본도 있으니까요. 이전 글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죽기 직전까지 일하는 것은 힘든 노역, 수치, 불행이 아니라 기쁨, 감사, 명예, 영광, 특권, 행복, 축복입니다. 다행히 저는 건강만 잘 관리한다면 그렇게 해 나갈 직업적인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난 죽을 때까지 일 못한다고 하시는 분은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시면 됩니다. 아니면 지금 하는 일을 아주 과감하게 줄여나가시면 됩니다. 다만 결코 일을 손에서 놓지 않고 계속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일을 적게 해도 노년에 들어오는 작은 연금 등에 비하면 상당한 수입이 될 것입니다.
관계
또 하나 매우 중요한 것은 관계입니다. 가장 중요한 관계는 배우자와의 관계입니다. 제 아내는 어찌 생각하는지 몰라도 제 생각에는 저희 관계는 상당히 괜찮은 것 같습니다. 요는 이 관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지금보다 더욱 소중히 여기고, 그 관계를 즐기고 감사하며 또 식물을 키우듯 시간과 정성을 들여 가꾸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과 이웃과 삶에 대한 열정
마지막으로는 세상과 이웃과 삶에 대한 열정입니다. 지금 없는 열정이 나중에 노년에 새로 생기겠습니까마는, 제가 하는 말의 요점은 그 열정을 결코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매일 뭔가를 배우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주변의 사람과 자연을 경이로움을 가지고 대하는 것, 그리고 아주 작게나마 세상과 이웃에 기여하고자 하는 노력, 그것이 바로 삶에 대한 열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 없이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위와 같이 살겠다는 것이 백살까지 살겠다는 저의 결정과 선언에 따른 다짐입니다. 그 부수효과는, 남은 오십년 정도의 삶을 풍성하게, 재미있게, 의미있게, 풍요롭게, 여유있게, 사랑과 감사의 관계 속에서 산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설령 내일 죽으면 어떻습니까? 억울할까요? 오십년을 더 살지 못해 아쉽긴 하겠지만 백세까지 살겠다는 선언 때문에 손해 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 선언 때문에 하루를 살든 한달을 살든 일년을 살든 그 기간 동안의 삶을 정말 신나게 열심히 잘 살 수 있었으니 수지맞은 것 아닐까요?
치매는 의미상실의 병
글을 맺으며 치매 이야기 잠깐 하려고 합니다. 저는 의사가 아니니까 전문지식은 없지만, 치매는 뇌에 어떤 물질이 자꾸 쌓여서 생기는 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재수없게 감기 바이러스가 내게 들어와서 내가 감기에 걸렸다는 것과 비슷한 설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원인을 외부에서 찾고, 그래서 나를 스스로 무기력한 희생자로 만드는 생각이지요. 어차피 감기 바이러스야 여기저기 있고 눈에 보이지도 않으니 조심한다고 해서 꼭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해 볼 수 있는 것은 나의 면역력입니다. 평소에 건강을 잘 관리해서 면역력을 높여 두었다면 감기 바이러스가 들어와도 능히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니까 감기로 고생을 하는 것이지요. 치매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치매 연구는 유전적 생화학적 기전에 대한 것이지만, 미국에서 매우 의미있는 다른 연구가 있었습니다. 수녀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입니다. 이 연구가 왜 획기적이냐하면, 수녀들은 생활 습관이 다 똑같고 먹는 것도 다 똑같습니다. 흡연, 음주 등도 없고요. 그러니 치매와 관련을 지어 연구할 많은 변수들이 제거되는 거지요. 그런데도 오랜 기간을 추적해 보니 어떤 수녀들은 치매에 걸리고 어떤 수녀들은 치매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 두 그룹간에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었기에 그런 것일까요? 연구자는 수녀들의 일기장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치매에 걸린 수녀들의 일기장은 거의 비어 있었습니다. 제가 앞 글에서 묘사한 은퇴자의 삶과 비슷하게, 나이가 든 수녀로서 맡은 일은 자꾸 줄어들고 판에 박힌 규칙적인 일상, 새로울 것이 없는 매일의 반복 때문에 일부 수녀들에게는 일기장에 적을 것이 자꾸 없어져갔던 것이지요. 그런데 치매에 걸리지 않은 수녀들의 일기장은 매일 뭔가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그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그 수녀들도 외부인이 보기에 뭐 대단한 일을 매일 겪는 것은 아니니까요. 치매에 걸린 수녀들과 같은 환경에서 사는 것이니까요. 그런데도 그 수녀들의 일기장이 빼곡한 것은, 그 수녀들은 매일 무언가에서 의미를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를 느끼게 한 자극은 어떤 음악일 수도 있겠고, 처마에 맺힌 빗방울일 수도 있겠고, 개구리나 작은 곤충일 수도 있겠고, 다른 동료 수녀일 수도 있겠지요.
이 연구를 통해 분명해지는 것은 치매는 의미상실의 병이라는 것입니다. 삶에 대한 호기심, 감사, 경이로움을 상실하면 우리의 몸과 뇌는 이제 삶을 다 살았구나 하고 스스로를 폐쇄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저는 의학 전문가도 아니고, 이런 측면이 치매에 대한 유일한 설명이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감기에 걸리지 않겠다며 하루종일 감기 바이러스를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원인에 집착하기 보다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주목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은 매일의 삶에서 감사와 보람을 느끼고 의미를 찾는 일입니다. 저는 그것이 치매 예방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노년을 잘 보내는 최고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은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어떻게 준비하시는지요? 그 준비 때문에 여러분의 오늘의 삶은 어떻게 달라지는지요? 불안과 초조로 허둥되게 되는지요, 아니면 여유와 지금 현재의 삶에 대한 감사로 충만한 하루를 보내게 되는지요?
저는 47년4월생으로 만72세 7개월! 그런데 작은 시골동네에서 매상 작은 편의점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들처럼 은퇴도 못하고 머리 허연 영감이 가게 카운터에 매달려있나? 하는 생각으로….좀 부끄럽기도 했었는데요. 생각을 고쳐먹으니 아무렇지 않더군요. 그래서 제가 편찬하는 사전에는 ‘은퇴 Retirement’ 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혹시 2-3년 후쯤 이 편의점 퇴직하고 다른 일을 시작하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ㅎ